비정규직은 연대를 통해 권리를 찾는다

[기획연재]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④  참세상 기사 바로가기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점점 박탈됐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미래의 희망을 잃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차별과 위계화에 익숙하여 비정규직을 폄훼하기도 한다. 때로는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으려고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운동의 목표는 단지 고용형태만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 비정규직의 눈으로 바라보고 함께 토론하면서 '비정규직 사회헌장' 18개 조항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오월의 봄 출판사)라는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그 중에서 네 개의 조항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18조>

노동자들은 위계와 경쟁을 거부하고,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과 단결하고 투쟁하고 연대하고 정치적으로 나설 권리가 있다.


"내가 김용균이다"

2018년 12월 11일,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하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서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울며 말했다. "오늘 동료가 죽었습니다. 석탄을 이송하는 설비에 기어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다섯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저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규직 안 해도 좋으니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런데 오늘 또 동료를 잃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증샷으로 만든 현수막이 놓여있었다. 그 현수막 안에는 그날 새벽 죽음을 맞은 고 김용균의 사진도 있었다. 그날 모든 비정규직이 함께 울었다.

이후 두 달 동안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외치며 싸웠다. 살기 위해서 나간 일터에서 죽고, 차별 때문에 자존감이 훼손되고, 정규직화 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오히려 해고되고, 회사가 불법파견을 저질렀는데 그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고 그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만 구속되는 세상에서 김용균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12월 21일과 22일 청와대 앞에서 1박2일 투쟁을 하고, 1월 18일 구의역에서 청와대까지 걸었으며, 그날 청와대 앞에서 다시 밤을 지새웠다. 1월 28일 하루단식과 문화제 등을 했고, 범국민추모대회나 고 김용균 죽음을 알리는 투쟁의 현장에는 늘 피켓을 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앞자리를 지켰다.

이 싸움에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토록 힘을 쏟았는가. 같이 투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자신의 절실한 현안을 안고 있었다. 해고당해서 천막농성을 하기도 하고, 사측 구사대에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를 앞두고 있기도 하고, 노동조합을 인정받지 못해서 싸우고 있었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위해 싸우는 중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모두들 김용균 동지의 투쟁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이 싸움이 비록 자신의 문제와 직접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진전시키는 과정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멈춰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듦으로써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싸움의 승리를 그 노동자들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10년이 넘는 해고생활을 끝내고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끈질긴 투쟁으로 불법파견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검찰을 이기고 아사히글라스 자본을 기소하도록 만들었을 때, 김천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가 부당해고 소송에서 이겼을 때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부당한 해고, 회사에 관대한 검찰에 대한 분노가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 투쟁을 할 때에도 이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서로 조언하고 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투쟁의 진전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길을 여는 것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연대투쟁을 넘어 공동투쟁으로

고 김용균 동지의 투쟁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한국사회 불평등의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과 만납시다'고 요구하며, 비정규직 스스로가 나서서 주체로서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11월 12일-15일까지 비정규직 노동자 100여명이 4박5일 동안 청와대와 대검찰청, 국회 등지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함께 싸웠다. 대검찰청 투쟁에서 6명이 연행되기도 했고, 국회와 청와대 앞 투쟁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다쳤지만 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별의 구획을 넘어 만나고, 공통의 과제를 두고 함께 싸웠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서로의 투쟁에 힘을 보태는 '연대'만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기 어렵다. 특히 한국사회는 비정규악법을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으며,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할 권리는 제도로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파견법, 기간제법을 폐기하는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위한 '특수고용 노동조합 인정'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 투쟁을 '노조법 2조 개정'이라는 형태로 함께 이루고자 한 것이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국회나 상급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개별사업장에 대한 연대를 넘어 제도를 바꾸는 '공동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 만들었다. 

지금 벌어지는 노조법 개악을 막기 위해서도 공동투쟁이 필요하다. 제도가 개악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노조가 없거나 노조의 힘이 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탄력근로시간제가 도입되면서 보완장치는 모두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어서 노조 없는 노동자들은 11시간의 휴게시간 보장도, 임금보전 방안도, 2주전 통보도 모두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더해 경사노위에서 파업시 대체인력 허용이나 사업장 내에서의 쟁의행위 금지 등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는 더더욱 파업의 효과를 갖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활동을 가로막는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현재 투쟁하는 이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과 단결하여 투쟁하고 제도와 정치를 바꿀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4월 13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법 2조 개정 투쟁에 연대하고, 문재인정부 출범 2년이 되는 5월 10일, 점차로 우회전하는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을 되돌리기 위해 싸우며, 7월초 총파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와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정책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는 노동조합이 있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아직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하고 있다. 노조가 없더라도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비정규직 스스로의 힘으로 제도를 바꾸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공동투쟁'에 함께 하게 되기를 바란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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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에 바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점점 박탈됐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미래의 희망을 잃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차별과 위계화에 익숙하여 비정규직을 폄훼하기도 한다. 때로는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으려고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운동의 목표는 단지 고용형태만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 비정규직의 눈으로 바라보고 함께 토론하면서 '비정규직 사회헌장' 18개 조항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오월의 봄 출판사)라는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그 중에서 네 개의 조항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제13조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은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권리이다.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보험 적용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실업을 당했을 때 실업부조도 제공되어야 한다.

반쪽의 권리만 보장받는 노동자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 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동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한 법, 이것이 바로 헌법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근로기준법을 모두 적용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우리의 상식을 배반한다. 제11조(적용 범위)에서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근로기준법을 완전하게 적용받으려면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일부만 적용받을 수 있다. 도대체 5명은 적용되고, 4명은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 조항이라는 건 뭘까? 

먼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연장 근로의 제한이 없다. 연차 유급휴가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연장 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사용자는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으며,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노동자는 사용자의 부당해고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근로기준법은 노동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과 해고 등에 있어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1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5인 미만 사업체 수는 320만개로 전체 80.2%를 차 지 하고, 종사자 수는 580만으로 전체 27.0%를 차지한다. 임금 노동자의 4분의 1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리를 쪼개서 보장하겠다는 법으로 인해 반쪽의 권리만을 보장받는 노동자들이 이렇게나 많다.

노동조합 밖을 서성거리는 노동자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0.7%에 불과하다. 30명 미만 사업장에서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2%밖에 안 된다. 300명 이상인 57.3%와는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왜 작은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규모가 있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걸림돌이 더 많아서 그렇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직이 잦다. 사업장을 전전하며 임금과 노동조건을 맞춰가고 있어서다. 고용관계도 명확하지 않고, 고용형태도 다양하다. 사업장에서 노동 분쟁이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을 통해 변화를 꾀하기보다 차라리 퇴사해버린다. 지금 사업장에 대한 기대가 없으므로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해 환경을 바꾸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상태는 작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도 되지만, 어렵게 만든 노동조합이 유지되지 못하는 이유도 된다. 때문에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면 사업장을 넘어선 조직화를 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업장을 넘어선 조직화에 대한 경험이 많지가 않다. 기업 단위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관리해와서다. 현재 공단 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전략조직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관성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형편이다. 기존의 일상적인 조직화 활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조직되지 못한 채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돈과 시간과 사람을 쏟아 부어도 그 노력만큼 성과를 보기 어렵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들 노동자를 조직하지 않고 노동운동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는 중요하다

자본은 계속해서 노동자들을 쪼개고 나누고 있다. 사업장의 규모로 분할하고, 고용형태로 위계화하고, 권리의 박탈을 법과 제도가 승인해주고 있다. 이 같은 자본의 노동자 분할 전략으로 단결하지 못하고 투쟁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불안정해져만 간다. 그러나 기존 단위 사업장 중심의 조직화와 투쟁으로는 노동권을 보장받기란 역부족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조직되지 않은 조직되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조직함으로써 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더 많은 조직화의 경험을 쌓아나가기 위해서다. 노동 상태가 균일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해나가며 노동권을 획득해갔을 때, 아직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이럴 때 우리의 노동 운동은 미래를 갖게 된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조직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에 나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 운동이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해만 대 변하는 데 그친다면,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배제한다면, 노동 운동의 미래는 없다. 조직화가 어렵다고 해서,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미뤄둘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 조직할지에 대해 더 집중해야 할 때다.

근로기준법의 완전한 적용을 위해 투쟁을 조직해야 할 때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할 때 봉착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제도적인 문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라서 권리가 박탈당함을 당연시하는 법·제도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제기 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완전한 적용은 캠페인을 넘어 현장을 조직하면서 투쟁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 문제다. 

앞서 밝혔듯이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이라는 기준이 위헌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과 국가의 근로감독능력의 한계를 고려하면 평등원칙에 위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도무지 합리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 게다가 이 기준은 불변의 법칙도 아니다. 2000년 노동부의 ‘근로기준법시행령 제·개정 발자취’를 따라가면, 근로기준법의 전면 적용 범위는 상시 16인 이상에서 상시 10인 이상으로, 그리고 현재 상시 5인 이상으로 변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존엄성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근로조건을 정한 법이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예외 없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야 한다. 사업장의 규모로 노동자의 권리가 제 한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권리는 허락받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자의 힘없이 노동권의 보장 또한 없다. 달리 방법이 없다.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의 힘으로 노동권을 획득해가는 수밖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완 전한 적용을 위한 싸움을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



노동자는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해야 한다

[기획연재]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②  참세상 기사 바로가기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자의 권리는 점점 박탈됐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미래의 희망을 잃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차별과 위계화에 익숙하여 비정규직을 폄훼하기도 한다. 때로는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으려고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운동의 목표는 단지 고용형태만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 비정규직의 눈으로 바라보고 함께 토론하면서 '비정규직 사회헌장' 18개 조항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오월의 봄 출판사)라는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그 중에서 네 개의 조항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제8조

모든 노동자는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20년 전에 나는 펜을 만드는 공장에 다녔었다. 펜심에 잉크를 주입하고 박스로 포장을 하는 일까지 8가지 공정을 거치는데, 공정 하나를 일주일씩 번갈아가면서 작업을 했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세척작업이었다. 조립과정에서 더러워진 펜심을 세척제로 닦아내는 일이었다. 시너, 톨루엔, 메틸알코올, 벤젠, 자일렌 등을 혼합세척제가 가득했던 5평 남짓했던 작업공간에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 작은 창문 하나와 작동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알 수 없는 닥트(DUCT) 하나가 설치돼 있었다. 때가 잔뜩 낀 방진마스크는 낡은 서랍 속에 방치되어 있었고, 면장갑 두 짝과 얇은 위생 비닐장갑이 지급된 보호구의 전부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세척실 가득 코를 찌르던 시큼한 화학물질 냄새를 기억한다. 처음 그 공정에 투입되고 3일 동안은 취한사람마냥 눈이 풀려서 다녔는데, 3일 지나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면장갑을 두 겹씩 끼고 일을 해도 한 시간도 안 되서 장갑은 세척제로 홀랑 젖어버리곤 했었는데, 마침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오른손 중지에 코딱지만 한 티눈이 세척작업 몇 번으로 깔끔하게 없어져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언니들 중 몇 명이 연속으로 유산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몇몇 사람들이 회사에 닥트시설을 추가로 설치하거나 제대로 된 보호구 지급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고, 서로 그 일이 하기 싫어서 눈치만 살폈다. 

2000년 초반, 공장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몇 개의 부서들이 분사되어 나가면서 인원이 정리됐고, 작업자가 모자란 곳에는 촉탁직들이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촉탁직들에게 세척실 업무가 떠맡겨졌다. 우리에게 더 이상 세척실의 작업환경 개선이나 보호구 지급 여부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고, 우리가 요구해야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비정규직들은 오래 다닐 것도 아니고, 어찌됐든 우리는 유해물질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켜냈으니까. 

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제8조>는 노동자들에게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는 안전장치를 해야 하고, 안전장치를 ‘대신’해 비정규직을 투입하면 안 되며,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언제라도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20년 전 우리는, 제대로 된 작업환경 개선이나 보호구 지급을 대신해 촉탁직이 그 자리를 메울 때 그것을 반대하고 싸웠어야 했다. 비정규직을 위험으로 내몰면서 지켜내는 안전은 진짜 안전이 아님을, 그렇게 방치되고 눈감아버린 안전하지 않은 일터는 결국 우리 모두를 위험으로 내몰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산재 사고로 죽어간 노동자가 33,902명이다. 방패막이 없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 그 중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사망률은 월등히 높다. 실제로 중대형 산업재해를 살펴보면 사망자의 90%가 하청업체 소속이다. 지난 2월 2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외주업체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죽음의 공장’으로 불리는 이 공장에서는 지난 12년 사이 35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그 중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는 29명이다. 고 김용균님이 일했던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5개 발전사에서 2012년부터 5년간 발생한 사고 346건 가운데 337건이 하청에서 발생했고, 2008년부터 9년 동안 산재로 사망한 40명 가운데 37명이 하청 소속 노동자였다. 조선소도, 건설현장도 마찬가지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하청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이 높다는 것은 대부분의 위험작업들이 하청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 노동자들의 죽음의 진짜 책임자들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청 대기업은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안전 등의 책임을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방식으로 책임에서 빠져나간다. 2008년 이천 냉동 창고에서 공사 중 불이 났다. 40명의 건설노동자가 사망했지만 해당 기업에 대한 처벌은 2천 만 원의 벌금이 전부였다. 2011년 인천공항철도에서도 5명의 하청노동자가 선로작업 중 열차에 치여 사망했지만 원청 기업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2017년 5월1일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골리앗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이 충돌하면서 휴게실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고 25명이 다쳤다. 엄청난 중대재해가 발생했음에도 당시 처벌받은 이는 골리앗크레인 신호수 1명이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된 것이 전부였다. 삼성중공업 사장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고, 사고 발생 1년여 만에 삼성중공업 조선소장 등 14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노동자의 죽음의 진짜 책임자가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누가 가장 많은 이윤을 가져가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책임은 그에게 있다.

그렇다고 하청업체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휴대전화 부품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5명이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을 했다. 사고가 난 사업장은 모두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의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3-4차 하청업체였다. 하청업체는 영세성을 이유로 산재를 예방할 만한 여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고, 비용절감을 위해 불법 파견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연하다. 원청 대기업과 상생 구조가 정착되지 않은 이상 납품기일을 맞추고, 단가인하 압박을 견뎌내기 위해선 노동자들을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업의 영세성이 노동자들을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까지 내 몰수 있는 위험한 환경을 방치해도 되는 면제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안전에 관한 조치와 법을 다 지킨다면 지불능력이 안 되는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수년간 해오고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법이 제정되자 자본가들은 “영구적인 대량 실업을 초래할 것”이라고 겁박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교육을 시킬 비용이 없다면, 보호 장비를 갖출 여건이 안 된다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지급하면서 산재처리 조차 꺼리는 기업이라면 망하는 게 맞다. 노동자의 안전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기업라면 말이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는 당연한 권리이다. 그 당연한 권리는 기업의 보다 많은 이윤창출을 위해서 묻히고 내팽개쳐지고 희생을 감수 당한다. 그 희생이 노동자의 목숨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윤창출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보다 중요하다는 인식, 그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해서 죽고, 다치고, 병들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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